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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사이의 간극 (the Gap in Betwee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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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07 16:35 조회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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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사이의 간극 (the Gap in Between)

 

 

안젤라 첸과 안토니오 황 (Angela Chen and Anthonio Huang)

대만 CLC

 

 

안토니오 : 제 이름은 안토니오이고 옆에 앉은 제 아내는 안젤라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 사목이라는 주제로 사랑의 기쁨의 맥락 안에서 우리의 고유한 체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CLC로서의 신원이 가정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결혼 생활, 그리고 또한 우리의 사명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나눌 것입니다.

 

안젤라 : 먼저 현실을 분명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신도들에게 사랑의 기쁨이 가장 실용적인 문서라는 뜻입니다. 사랑의 기쁨에는 가정 교회라는 말이 마지막 성가정에 드리는 기도를 포함해서 11번 나옵니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친교라는 교회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확대 가족의 역할, 특히 부모의 역할을 생각하게 합니다.

 

안토니오 : 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젊은이들의 도덕적 양성과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목적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아이들과 그들의 이웃들의 체험에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젊은 세대의 문제들도 있습니다. 약혼한 연인이나 결혼한 부부들을 사목적으로 돌보는 작업은 우정의 마음을 담은 사랑으로 강화되고 그 사랑에 기반해야 합니다. 그럴 때 결혼 생활의 모든 측면이 통합되고, 가족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이런 것들이 더 나은 전략임을 고백합니다.

 

안젤라 : 현실을 해석하는데 받아들일만한 이론이 있고, 임의로 만들어낸 이데올로기가 있어서 이 둘 사이에서 간단히 하나를 선택하거나 또는 이 둘 사이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결혼이 아닙니다. 우리는 몇십년 동안 지속되며 남자와 여자 모두가 건강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진정한 결혼을 원합니다. 많은 젊은 가톨릭 신자들이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나갈 때 우리의 삶은 진정으로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안토니오 : 우선 제 개인적인 가족사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이게 제 결혼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 가족 전체가 마카오로 이민을 갔습니다. 저는 일곱 살 까지는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20살 때 학업을 위해 대만으로 왔습니다.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마카오로 이사를 온 이래로 부모님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따로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홍콩에서 일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사업에 실패하신 뒤 인도네시아에 남아서 재기할 기회를 보고 계셨습니다. 물론 두 분의 결혼 생활에는 이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두 분께서 따로 사신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199912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야 마침내 두 분이 다시 만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절대로 부모님 같은 결혼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 저는 대만을 떠나야 하는 직장은 모두 다 거절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부부들은 자신의 일을 위해 따로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제 결혼생활을 깊게 해나가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기때문에 저는 사려 깊고 민감하며 책임을 져야합니다.

 

안젤라 : 제 이름은 첸 이오 이고, 안젤라는 제 세례명입니다. 저는 중국 남부에 위치하고 20년 전까지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매우 아름다운 국제 도시, 홍콩 출신입니다. 저는 부모님과 외조부모님과 함께 홍콩에서 21년을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가톨릭계 학교로 보내셨고, 거기서 저는 가톨릭 단체에 가입하고 피정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세례는 받지 않았습니다. 1982년 저는 대만으로 와서 심리학 전공으로 학부를 마쳤습니다. 그 전 여름동안 저는 베트남과 중국 난민들의 위해 일하는 매우 중요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 체험으로 인해 저는 청소년 교육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학교 상담가이자 특수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기관의 교사가 되는 행운을 가져다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성숙한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한 훈련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저는 주로 두 교회에서 양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두 교회는 모두 1960년대 한 예수회원이 설립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CLC에서 종교 양성을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제 영적 지도자이신 예수의 딸(Hijas de Jesus) 수도회의 마 수녀님께서는 수도 성소를 한 번 고려해보도록 권하기도 하셨습니다. 수도 성소와 평신도 성소 모두 그리스도를 긴밀하게 따르는 요청이었고, 저는 많은 수녀님들과 함께 사는 것보다 한 남자와 함께 사는 것이 더 자유로울 것 같아서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저는 안토니오와 결혼하여 대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 명의 멋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큰 딸은 26살이고, 둘째 아들은 24, 지금 이 자리에 같이 온 천사 같은 우리 막내는 12살입니다.

 

안토니오 : 안젤라처럼 저도 마카오에서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대학교 2학년이던 1983년 대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 대만 국립 대학교에 있는 대학 CLC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저는 CLC와 함께 하면서 공동체와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계획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자 여러 캠프에 참여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2년 뒤인 1987년 안젤라와 저는 성인들을 위한 CLC 공동체와 함께 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 단위 공동체의 회원입니다.

 

CLC로 살아가겠다고 서약할 때 핵심 개념인 세 가지 기둥은 공동체, 영성, 사명입니다. 결혼한 부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주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매주 모임을 하고 있었지만 소모임을 하는 것이 더 좋았고, 우리는 이 소모임을 마리아라고 불렀습니다.(가정의 안녕에 대한 통칙 4번의 원리) 이 작은 부부들만의 공동체는 1991년 시작되었고, CLC 내에서 우리를 지원하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우리는 각자의 직업에서 전문가들로, 하루 종일 일하고, 야근에 주말 근무로 지치고 약해져갔습니다.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또는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아니면 매달 임대료를 벌기 위해서 우리는 자녀들과 친구들과의 시간을 희생하고 일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지나친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영적 길잡이와 얘기를 나눌 용기를 낼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분명 우리들은 일상의 삶에서 길을 잃었고, 결혼 생활에서의 우정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결혼 7년차가 되던 1996, 우리는 ME에 참여하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주말동안 우리는 아주 좋은 체험을 했습니다.

 

안젤라 : 끔찍했던 7년의 기간이 지나면서 저는 남편과 둘만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같은 여성에게 있어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집에는 가정부나 육아돌보미가 없었습니다. 학교 학생들 앞에서는 소리를 지를 수 없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특히 1990년대에 안토니오가 거의 매달마다 있었던 출장을 갈 때면 더 심해졌습니다. 저는 몇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24시간 내내 대기하고 있는 삶에 지쳤습니다. 제가 감당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고, 조율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쉴 시간은 없었습니다. 하느님과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때는 성당 뒤에 앉아서 십자가를 바라보다가 저는 왈칵 울음을 터트렸고 곧 슬픔에 가득 차 성당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제가 주님을 잃고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롭게도 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국제 ME를 통해 우리는 각 사람이 갖고 있는 감정의 여성적인 세계관을 깊게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ME 주간은 우리의 일상생활이 배우자들을 어떻게 느끼게 만들어오고 있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분석하고, 표현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화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여러 감정적 느낌들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우리의 두려움을 서로에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대화기법은 부부들이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고 불씨를 되살리게 도와주는 정말 좋은 작업이었습니다. 직업이 상담가였지만 저 역시 얘기해야 할 것을 너무나도 많이 가지고 있는 한 명의 여성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결혼 안에서 평생 지속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안토니오 : 우리는 서로 동반하며, 체험과 여러 가르침들을 나눴고, 특히 감정, 나 자신과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하느님과의 관계와 느낌을 서로 나눔으로써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기법인(사랑의 기쁨 139) “대화”(사랑의 기쁨 136)를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부부간의 관계에서 우선순위를 찾는 것이 사랑이라고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점점 서로의 사명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쇄신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부부들과 사제들이 친밀하고 책임 있는 관계를 온전히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국제 ME 모임은 전문적인 상담가가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있는 부부들을 위한 그룹 치료도 아닙니다. 이건 흔한 오해입니다. ME에 참여하는 우리는 일반적인 부부, 사제들이며 사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약해질 수 있는 강한 사람들입니다.    -계속- 

 

 

*IFE 에서 대만 CLC 부부 회원이 CLC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체험을  발표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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