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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018목요신학강좌 심화과정 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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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08 16:53 조회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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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경 CLC 수련기간에 서강대 강의실에서 목요신학강좌를 1년 정도 들은 적이 있었다. 한창 일해야 하는 나이였고, 실제 직장일도 많이 바빠서 강의 들으러 가는 차안에서 언제나 저녁식사 대신 토스트를 먹으면서 갔다. 운전하면서 무엇인가를 먹는 습관은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직장 옆 00 토스트 가게는 참 맛이 있었다. 2017, 작년 가을에도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힘건물 5층 강의실에서 목요신학강좌 심화과정을 들었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밤에 친숙한 회원들과, 아주 오랜만에, 같이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인지 그때를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러나, 사실 강의 내용은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다.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은 굉장히 많은 내용을 강의하셨고 나 역시 필기도 해가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뿌듯해했던 것 같은데.. 수동적 강의의 전형적인 한계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 목요신학강좌를 신청하였다.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일단 강의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예수님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과 바램도 있었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이끌어왔던 지적 호기심과 삶의 많은 부분을 허비하게 했던 지식욕에 또한번 휩쓸린 것일 수도 있다. 젊은 날 허기 속에 먹었던 토스트맛, 그 아련한 추억이 내 마음을 움직였을 수도 있다.

 

2018913일 목요신학강좌 심화과정의 첫 강의였던 정태현 신부님(한님성서연구소)의 강의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의의 대부분 시간을 할애한 첫 부분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학자들의 방대한 연구를 요약해 주시면서 역사비평모델에 대한 방법론도 언급하셨고 새로운 포괄적 역사비평모델에 대한 제안도 하셨다. 두 번째 부분은 성경 구절에 대한 신앙적 접근(아마도 우리가 하는 묵상기도 같은 방법)으로 도달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통찰(그리스도교 믿음의 본질)이었다.

 

강의 다음 주에 추석 연휴가 있었다. 부탁 받은 후기를 빨리 쓰고 추석 연휴를 마음 편하게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언젠가 시간 여유가 생기면 신학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젊은 날의 당돌한 계획, 이제는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마음을 접었는데(그 결정이 아쉬웠는지), 문득 한 번 정도는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추석 당일 부모님과 처가댁에 다녀오기는 했으나 그 외 많은 시간을 집 근처 카페와 성당의 북카페에서 보냈다. 화창하고 서늘한 가을 날, 직장 일을 떠나 내 전문분야가 아닌 공부를 학생처럼 해 보았다. 나흘 동안 나는 과거 목요신학강좌의 기억과는 또 다른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갔다. 다행히 정태현 신부님께서 강의 자료를 잘 정리해서 나누어 주셨고, 강의 시간에 열심히 듣고 메모해 놓은 것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학적 연구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았으며, 이를 노트로 정리해 놓았다. 그러나 내가 정리한 그 많은 전반적인 내용들을 여기 기술하는 것은 필요치 않은 것 같다. 강의의 전반부인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는 두 가지 정도만 나누고자 한다.

첫째 성경을 접근하는 방법이다. 정태현 신부님이 역사비평모델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면서,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수많은 방식이 있듯이, 우리도 성경 본문에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 접근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네 가지 차원의 모델(인간적, 역사적, 문학적, 종교적 차원)이 있다고 언급하셨고, 신약성경 독서의 합당한 모델은 이를 통합한 체험/해석의 보다 포괄적인 모델이라고 하셨다. 이 부분을 나누고 싶은 이유는 이것이 CLC 영성 수련과정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관상기도를 했던 우리의 방법을 학문적(신학적)으로 정립해 설명한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을 접근할 때 성경은 한권의 책이므로 전공별로 나누어 연구하는 학문적 접근은 잘못된 것이며, ‘신경같은 교회의 신앙고백, 또한 개인의 하느님 체험이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좋았다.

둘째, 역사적 예수에 대해 연구한 많은 신학자중 Albert Schweitzer에 대한 내용이다. 슈바이처는 자신의 논문에서 나사렛 예수는 이성주의로 설계되고, 자유주의적인 삶을 살았으며 역사적 옷 속에서 현대신학을 입은 인물이다. 이 이미지는 밖으로부터 파괴되지 않았다.“고 기술하였다. 슈바이처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의 하느님 나라에 관한 윤리 자체다. 그 가르침이 입고 있는 역사적 옷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슈바이처는 이렇게 역사적 삶과 가르침을 분리하였다. 역사적 삶은 지나가는 것이지만 가르침은 영원한 것이기에

이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계속 마음속에 담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슈바이처가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을 내가 좀 더 생각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뜻이었을까? 추석연휴 마지막 날 밤에 딸아이가 학교 과제로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life of Pi)를 봐야한다고 하기에 같이 보게 되었다. 영화는 끝날 무렵 그때 까지 알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제시한다(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더 이상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겠다).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와 일치할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동일한 사건이 품고 있는 의미(본질)를 다른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인지 동일한 사건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 또한 그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듣고 어떻게 느꼈느냐하는 것이다. 그것이 삶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시각이고, 또한 삶을 살아가는 그 사람의 태도를 바꾸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토록 사랑하셨던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만드셨을까? 어떤 사건을 역사 속에 만드셨을까? 나는 이 맥락 안에서 강의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두 번째 접근 방법(성경에 드러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신앙적 접근 또는 묵상)을 정리해 보았다. 정태현 신부님은 몇 가지 성경구절을 강의 교재로 사용하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마태 16,13-20), 니코데모와 대화 속에 나오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에 대한 이야기, 눈에 보이는 수많은 기적을 보았음에도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했던 제배대오의 두 아들(을 포함한 12제자),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당신을 깨닫게 하신 방법,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통받는 주님의 종, 넷째 노래를 읽으며, 이 내용이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고 이것이 누구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라고 묻는, 전혀 다른 방식의 에티오피아 내시의 질문(사도 8,26-40). 이 성경 구절들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의미를 통해 드러난 예수님은 누구이신지를 설명하셨다. 예수님은 과학의 대상의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계시를 통해 알 수 있는 믿음의 대상이므로, 탐구를 통해 도달하는 결론이나 가시화된 기적의 증명으로 접근해서는 그 분을 알 수 없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면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체험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 의미를 알려주는 성경(특히, 구약)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대한 이야기, 즉 예수의 십자가가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이다.

 

이번 강의와 후기를 작성하기 위해 노력한 2주간의 시간 동안 성경을 참신한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역사적 정확성을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역사적 예수 연구 이전의 시대에 복음서 진실이라는 단어로 신자들에게 무조건적인 진실성에 대한 타협을 강요하며 인간을 무시했던 중세교회의 의견, 현재도 이런 방법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경계를 짓고 싶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지만, 몇 가지 좋은 질문을 만났다.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하느님이 인간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현대를 사는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나는 지금 여기 나의 삶에서 그 느낌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제, 예수님이 직접 선사하신 영원히 새로운복음이 지금 우리를 관통한다(2014년 매일미사에 수록된 묵상글에서 발췌한 표현)는 말의 의미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20189, 100년만에 가장 더웠다는 서울의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찾아왔던 서늘한 가을날, 나는 내 삶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 한기준님의 목요신학강좌 심화과정 제1강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태현 신부)의 수강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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