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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아마존 프로젝트 파견회원 나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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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7-05 11:53 조회4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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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rning (배움)

 

하느님께서 특별하고 온화한 방식으로 드러나시는 이 땅에서의 순례를 매달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아마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눔이 없는 침묵의 시간을 눈치껏 존중해주시는 것 같은데, 이는 아마도 제가 사는 이 아마존 외곽 지역에 점점 더 잘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벌레들을 더 많이 보게 되지만, 예전만큼 많이 물리지는 않고, 물리더라도 가려운 정도가 참을 만합니다. 더위도 견딜 만합니다. 그렇다고 땀을 덜 흘린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더위를 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적응하는 데에는 선풍기와 에어컨이 역할을 해줍니다. 저는 이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얼굴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대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각 나라와 지역마다 그 안에서만 통용되는 그들만의 말이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거의 써 본 적이 없거나, 그 맥락 안에서 사용되는 의미를 모르는 저로서는 그간에 대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었습니다.

 

짧은 서론에 이어 지금부터는 그간의 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0월부터 저는 아마존 강 유역 공동체 방문을 재개하였고, 10개의 공동체 중 마지막 공동체인 자라고자, 리베르타드, 푸에르토 트리운포(Zaragoza, Libertad and Puerto Triunfo)를 방문함으로써 1차 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1차 여행은 각 공동체가 처한 현재의 사목 상황을 보다 이해하고,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앎으로써, 사목을 담당하는 팀과 지역 공동체와 함께 이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본질, 의례 그리고 전통을 훼손하지 않고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서 하느님과 고유한 관계를 맺어나가고, 신앙의 불꽃을 유지하게 하는 사목 계획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들 공동체들은 레티샤(Leticia)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지역을 오가는 보트는 작은 엔진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서, 이동하는데 약 4~5시간이 걸립니다. 작은 배로 이동하는 것은 고되기도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 그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그들과의 대화는 제 연구에 많은 영감을 줍니다. 게다가 그들과 보다 더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그들과 함께 지냈던 나날들을 떠올리면 그들을 좀 더 친근하게 여기게 되고 그들 역시 저를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 지역에서도 기후 변화의 영향이 분명하게 관찰됩니다. 비가 전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조리 목적으로만 빗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영양 섭취나 냉방을 위해서 물을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입니다. 아마존 강의 물은 오염되어서 소화 장애와 피부 발진을 유발하기 때문에 인간이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레티샤에서 이렇듯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이들 공동체에는 복음주의(Evangelicals), 오순절 교회(Pentecostals), 침례교회(Baptists) 등과 같은 다른 교파들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는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행복하게 그리고 조화를 이루며 이웃들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그렇듯이 어느 교회의 신도들은 다른 교회들은 배척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들의 눈에는 가톨릭 교회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입니다. 그들은 가톨릭 교회는 사람들이 술에 취해서 싸움을 일으키고 결국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심지어 공동체원을 죽이기까지 하는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들은 지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으며, 예전에는 밍가(mingas: NB 유형의 전통적인 공동체 활동)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일부가 더 이상 그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공동체의 발전을 방해하며 그 구성원들 사이에 개인주의를 만들어내어 지역 의회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파가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이런 갈등을 겪어야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교파가 다르다는 것이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저는 종교 간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공존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에 합의하는 사목자들이 모여서, 누가 더 나은지 따지거나 아니면 누가 더 많은 신자들을 갖고 있는지 경쟁하지 않으며 서로 소규모로 대화함으로써 비록 서로가 믿음을 살아나가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같은 하느님 아빠, 하느님 엄마의 자녀로서 살아감으로써 공동체의 공동선을 증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작은 경험들을 하면서, 아돌포 체르코레스(Adolfo Chercoles)의 진복팔단(Beatitudes)을 읽을 때에 저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공감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모든 이들의 형제라면, 형제애를 갖고 있는가의 관건은 내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느끼는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와 우연히 만났을 때 자신들이 나의 형제라고 느낄 수 있는가이다. 형제애는 바로 이런 지점에서 드러난다. 나의 작은 마음이 그 사람을 형제로 느낀다고 한들, 그가 나를 고슴도치로 여긴다면, 그 사람에게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이 말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자주 우리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우리가 하는 것들이 늘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말했듯이, 이는 관대함에서 온 것이 아니며, 아마도 상당부분 무의식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행복감만 찾고 있어서,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이 진정한 우리의 형제 자매로 자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하지 못하게 합니다.

 

바로 이런 감정과 성찰 안에서 저는 제 마음을 건드리는 그 어떤 말씀도 잊지 않기 위하여 예수님만을 바라봅니다. 제 가장 연약함 속에서 저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보고, 듣고, 말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제가 스스로를 고슴도치라고 느낄 때조차도 다른 사람들이 제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합니다.

 

이 시간은 배움을 위한 학교와 같습니다. 지역사회의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동료 순례자들과 나누는 과정 안에서도 배움은 일어납니다. 저는 이 순례자들(자원봉사자, 수도자, 평신도)과 제 일상을 나누고, 그들과 만나 저녁 식사를 하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일과 후에 각자의 하느님 체험, 서로 느끼는 기쁨과 두려움,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바에 대하여 나누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각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만나고, 우리가 있는 그대로 서로에게 받아들여지고 환대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제가 행동할 때마다 같은 충동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으면서 저는 제가 지속적으로 꿈꾸게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발견합니다. 저는 이번 달에 아마존 연방 대학교(the Federal University of Amazonas)의 기초 포르투칼어 과정에 등록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겠다는 다소 치기 어린 행동 덕분에 저는 여러 활동과 관심사를 가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많은 유익한 것을 배울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친구들 모임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번 나눔은 아마도 포르투칼어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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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지역 공동체와 통합되어 들어가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저에게 영적 지도를 해주신 페르난도 로페즈 예수회 신부님(SJ)께서 마지막 세션에서 들려주신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지역 사회와 함께 일할 때는 세 개의 신호등이 있습니다. 첫 번째 신호등은 지역사회의 신호등입니다. 그 신호등은 자신만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며 지역 주민들이 우리를 신뢰한다고 느낄 때에야 비로소 초록색 불이 들어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의 전례에 참여하고 그들의 공간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신호등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의 신호등이 빨간색일 때에도 강제로 그것을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는 나의 시간과 진도 안에서 나 역시 지역 사회와 나눌 수 있도록 그 신호등을 초록색으로 바꿀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세 번째 신호등은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신호등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제 시간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아직 그 신호등이 노란색이라면 하느님께서 여전히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페르난도 로페즈 신부님은 또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보통 이 세가지 신호등에서 이 과정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세 개의 신호등에서 매우 유사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한 개가 초록색이면 나머지 것들도 역시 초록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신부님께서는 제가 그러한 세 가지 과정 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하느님께서 제게 선사하시는 체험들에 저 스스로를 개방하도록 제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하느님은 빨리 가라고 저를 떠밀지도 않으시지만 그렇다고 제가 미적거리게 내버려두지도 않으십니다. 또한 이 과정은 나만의 의지가 아니라 세 주체의 의지가 함께 어우러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네 번째 달의 여정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별것 아닌 나눔을 읽어주시며 동반해주시는 모든 분들을 형제 자매로서 제 마음을 담아 꼭 안아드립니다.

 

Lore

 

 

** 로레나 페레즈(애칭, Lore)는 에콰도르 CLC 회원으로 현재 아마존 프로젝트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계 공동체의 사명과 일치하는 방법으로 생 프런티어에서 자신의 삶과 활동에 대해 성찰한 것을 매달 나누고 있습니다. 

이 글은 로(Lore)의 네번째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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